12월 3일 국회 앞 달려간 시민분들께 감사합니다
누군가 '일시정지' 버튼 누른 듯 12월 3일 밤에 멈춘 일상... 그럼에도
12월 3일 국회 앞 달려간 시민분들께 감사합니다
오늘도 시계를 본다. 12월 3일 오후 11시 어제도, 그저께도 계속 같은 시간을 살고 있다. 그 날 이후 1초도 흐르지 않은 것만 같다. 그 날, 나는 다음날 이른 시간 해야 할 강의가 있어서 평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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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11 11:21l최종 업데이트 24.12.11 11:25

오늘도 시계를 본다.
12월 3일 오후 11시
어제도, 그저께도 계속 같은 시간을 살고 있다.
그 날 이후 1초도 흐르지 않은 것만 같다.
그 날, 나는 다음날 이른 시간 해야 할 강의가 있어서 평소보다 일찍 잠옷으로 갈아입고 포근한 이불 속으로 몸을 구겨 넣고 있었다. 마침 시청 중이던 유튜브에서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다는 말이 흐릿하게 들렸다.
'미쳤구나. 저 유튜브 진행자도. 구독취소 해야겠다.'
라고 생각하며 휴대폰을 집어 든 순간, 대통령 목소리와 함께 계엄을 선포한다는 영상이 나왔다. 나는 순간 침대에서 뛰쳐나와, 작은방에서 게임하고 있던 남편에게로 뛰어갔다.
"자기야 계엄선포 됐어. 대통령이 계엄선포했어. 미쳤나봐."
남편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게임을 멈추고는, 포털뉴스에 계엄 뉴스가 났는지 찾아보는 것 같았다. 그 이후는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우리가 어떻게 오늘까지 왔는지 말이다.
캐롤이 멈췄다

11월부터 내 차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던 크리스마스 캐롤은 멈췄다. 연말파티를 위해 쿠팡에서 빨간 리본핀 하나를 장바구니에 넣어둔 채 구매클릭을 깜박했다. 조카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고르기 위해 레고 모델을 검색중이었는데, 그 목록을 어디에 뒀는지도 모르겠다.
가까운 지인이 책을 출간해서 축하메세지를 써서 보내고 싶은데, 내 마음은 그 한 글자를 써낼 여유공간이 없다. 10월부터 거의 매일 글을 쓰고 있었는데, 지금은 한 줄도 못 쓰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성경필사를 위해 성경을 폈지만 한숨이 성경을 덮고는 한다.
요약해 말하자면, 누군가가 나의 일상 시계에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것만 같다.
나의 시계는 멈췄지만, 내 하루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그럼에도 흐르고 있다. 여전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포근한 이불 속에서 잠이 들고, 남편의 코고는 소리에 새벽에 잠깐 잠을 깨기도 한다. 전날 까먹은 노란 귤껍질이 식탁 위 바스락 거린다.
며칠 뒤가 종강이라서, 학생들에게 기말시험관련 안내를 어떻게 할까 노트북을 펴서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고 있다.
그럼에도 하루가 흐르는 것은
12.3 내란으로 영원히 멈출 수도 있었던 평범한 일상이 여전히 느리게 흐르는 것은 다른 시민들 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날, 따뜻한 집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름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가는 귀가 길에서 또는 친구들과의 반가운 식사 자리에서, 모처럼 일찍 잠들려고 몸을 눕혔던 침대에서 '계엄선포'라는 이야기를 듣고 국회로 달려온 분들 덕분이다.
국회로 내달리면서, 또 헬기와 군인들을 봤다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칠 만도 한데. 그 생각이 머리 속에 도착하기도 전에 그들은 국회 문 앞에 매달렸다.
당시 현장 영상을 보니, 계엄군에게 "너 어디서 왔어? 왜 그래?" 라고 소리 지르며 화난 아빠처럼 말한 이들도 있고, 계엄군을 너무 밀어붙이지 말라고 말리면서 이러지 말라고 타이르는 엄마처럼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옷을 잡아당기며 앳된 목소리로 "이러면 안 되잖아요." 라고 울부짖는 남동생 같은 목소리도 있었다.
무장한 계엄군은 시민 서넛이 달려들면 뒷걸음질을 쳤고 자기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고 두 손을 저으며 시민들을 뒤로 물리는 것 같았다. 마치 자기몸에 시한폭탄이 있으니 근처에 있지 말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눈발이 흩날리던 여의도 국회 문 앞,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부모이고 가족이었다. 단지 서로 입고 있는 옷이 다르고, 해야 할 일이 달랐을 뿐이다.
무장한 계엄군이지만 그들이 누군가의 가족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계엄군과 마주한 시민들, 얼굴과 몸은 일체 가렸지만 시민들을 보면서 집에 있는 자신의 가족을 떠올렸을 계엄군들.
어쩌면 그들이 서로 이리 밀고 저리 밀리면서 계엄의 그림자를 국회 밖으로, 대한민국 밖으로 밀어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이 엉망진창 같고, 비상식적인 일이 가득해서 어디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다고 생각하던 요즘이었다.

혐오와 거짓의 거미줄이 세상 곳곳에 드리워져 사랑하는 조카에게 이 세상에 대해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 암담함을 느끼던 그 때, 12월 3일 밤 국회 앞으로 달려온 시민들의 모습은 삶은 이렇게 살아내는 거라고 내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우리의 삶은, 위대한 한 사람이 아니라 고통을 축적해내고 고통이 몸에 새겨져서 고통을 껴안고 사는 사람들 덕분이었다. 정세랑 작가의 소설 <피프티 피플>에서 가습기 피해 유가족이 이런 말을 한다.
"너 그거 알아?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안전법들은 유가족들이 만든거야."
'살아있는 모든 것은 무언가의 죽음을 먹고 사는 존재'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지금 이 글을 써내려가는 아주 평범한 오늘은, 지난 12월 3일 저녁 자신의 목숨이 어떻게 될지 계산하지 않고 무작정 달려간 사람들, 그들의 죽음을 각오한 내달림 덕분에 있다. 계엄 선포 뒤 이어진 일상을 복기해보니 정말 그렇다.
https://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087534&PAGE_CD=N0002&CMPT_CD=M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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